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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리포트②] 캄보디아 ‘당사자 중심 제도’ 토대를 만드는 사람들

Tuesday, 25 December, 2018

활동보조 서비스부터 경제적 자립 지원까지
장애인 권익 중심의 제도 만들어가기 위한 민간의 노력들

세계은행(World Bank)이 2013년 발간한 '세계 장애 보고서(World Report on Disability)'에 따르면, 2005년 캄보디아 장애인은 인구의 6.4%이다. 이러한 수치는 주변국인 베트남(5.8%), 미얀마(2.0%), 말레이시아(4.5%)에 비해 높다. 크메르 루주 정권 통치기(1975~1979) 당시 내전으로 많은 후천적 장애인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변국보다 높은 장애인 출현율에도 불구하고 캄보디아 장애인 정책은 이제 시작 단계이다. 캄보디아는 2009년에 '장애인 보호와 권리 보장에 관한 법률(Law on the Protection and the Promotion of the Rights of the People with Disabilities, 아래 장애인법)'을 제정했다. 이후 2012년에는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가입국이 되었다. 정부조차도 집계하지 못할 만큼 많은 비정부기구가 캄보디아에서 장애인 지원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 있는 캄보디아에서 경기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아래 경기협의회)가 자립생활 이념을 심기 위해 출사표를 던졌다. 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공적개발원조) 사업으로 캄보디아에 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경기협의회는 지난 12월 25일부터 30일까지 캄보디아에서 현지 사전조사를 진행했다. 이동 시간을 제외한 4일 동안, 연수단은 캄보디아 사회부 장애인복지과, 코이카(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한국국제협력단) 캄보디아 본부, 캄보디아 한인회, 현지 장애인 가정 두 곳, 캄보디아 전역에서 유일한 자립생활센터인 프놈펜 자립생활센터(PPCIL) 및 장애인 지원 사업을 하는 베테랑 인터네셔널 캄보디아(Veteran International Cambodia, VIC) 등을 방문했다. 비마이너가 이를 동행 취재했다.


캄보디아의 유일한 장애인자립생활센터인 '프놈펜 센터'를 방문하다

국가적 차원의 장애인 정책이 초기 수준에 있는 캄보디아이긴 하지만, 장애인 자립생활의 씨앗은 이미 뿌려져 싹을 틔우고 있다.

프놈펜자립생활센터(아래 프놈펜 센터)는 캄보디아 전역에 단 한 개 있는 자립생활센터이다. 프놈펜 센터는 2009년에 세워졌다. 센터를 만든 사미스 소장은 2007년, 일본에서 진행된 '더스킨 리더십 훈련(아시아 태평양 지역 장애인 리더 양성 프로그램)'을 수료한 후 캄보디아에 자립생활센터를 만들었다. 하는 일은 한국 자립생활센터와 유사하다. 장애인 인식개선 사업, 역량 강화, 권익 옹호, 접근성 개선, 그리고 활동보조 서비스까지 진행하고 있다.

현지 연수 참가자들이 프놈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개를 듣고 있는 모습.

현지 연수 참가자들이 프놈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개를 듣고 있는 모습.

프놈펜 센터는 지역사회 주민을 대상으로 인식 개선 교육을 하기도 하지만, 공무원이나 학교 교사 등 공공기관 종사자들의 인식개선에 초점을 두고 있다. 교육 시간에는 자립생활의 개념, 장애인에 대한 인권적 시각 등을 교육한다. 사미스 소장은 "공무원이 장애 이슈를 알고 있어야 각종 정책에서 장애인이 고려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요즘 캄보디아에는 건물이나 도로가 많이 생겨나고 있는데, 설계 과정에서부터 장애인 접근성을 고려한다면 추후에 다시 고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장애인법에 다양한 내용이 담겨있는데 그것이 잘 준수되는 것은 공무원 인식에 달려있다. 그래서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인식개선 교육이 중요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프놈펜 센터와 정부 간 교류는 인식 개선 교육에 그치지 않는다. 센터는 'IL 네트워크'를 구성해 석 달에 한 번 모임을 연다. IL 네트워크는 프놈펜 센터 직원, 커뮨 오피스(Commune Office, 한국 주민센터에 해당하는 기관. 한 '커뮨'은 마을 10~12개를 묶은 단위) 공무원, 지역 장애인 당사자가 모인다. 이 자리에서 센터와 당사자들은 공무원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요구하고 협상을 진행한다. 또한, 이전에 요구했던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기도 한다. 사미스 소장은 "캄보디아 복지 정책은 중앙 정부 차원에서 실행되는 것이 아니라, 예산을 커뮨 오피스에 할당하고 그 안에서 커뮨 오피스가 자율적으로 시행하는 구조이다. 그래서 커뮨 오피스와의 소통이 지역 장애인의 삶을 실질적으로 바꿀 수 있는 열쇠"라고 설명했다.
 
역량 강화 활동 역시 프놈펜 센터의 주요 사업 중 하나이다. 불교 문화가 강한 캄보디아에서는 장애인이 된 이유를 '업보'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사미스 소장은 "많은 사람이 '장애는 나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문제는 장애인 자립 환경이 준비되지 않은 사회"라면서 "그래서 '장애'에 대한 인식 전환을 위해 당사자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그는 "부정적 장애 정체성은 당사자를 소극적으로 만들고, 자신의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누군가 '시혜 베풀어 주기를' 기다리게 한다. 당사자 교육은 캄보디아 사회에서 진정한 의미의 '당사자주의'를 뿌리내리기 위한 준비 단계"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프놈펜 센터에서 가장 주력하고 있는 사업은 활동보조인 사업이다. 인식개선이나 역량 강화 등은 다른 NGO에서도 많이 하고 있지만, 활동보조 사업을 하는 곳은 캄보디아 전역을 통틀어 프놈펜 센터 한 군데뿐이다. 현재 프놈펜 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활동보조인은 총 열다섯 명이다. 다섯 명은 센터에 고용된 사람들이고, 열 명은 자원활동가들이다. 한국과 달리 정부 지원이 전혀 없기 때문에, 센터 예산으로 고용한 스태프들이 활동보조인 역할을 한다.

프놈펜 센터에서 활동보조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프놈펜 센터

프놈펜 센터의 재원 역시 캄보디아 정부가 아닌 해외 원조단체들로부터 나온다. 호주 ODA 기관인 '오스트레일리안 에이드(Australian Aid)'와 유니세프가 공동으로 지원하는 ODA 기금으로 일 년에 2만5천 달러(약 3천만 원), 일본 오사카에 있는 장애인 단체인 '메인스트림 어소시에이션(Mainstream Association)으로부터 일 년에 2만 달러(약 2400만 원)를 지원받는다.
 
사미스 소장은 "단체 사정이나 사업 특성에 따라 보조금이 언제 중단될지 모른다. 그래서 정부 지원받는 것이 목표인데, 정부는 민간단체들이 해외 원조를 받기 때문에 돈이 많다고 생각해 지원하지 않으려 한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놈펜 센터는 안정적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지난 2016년엔 커뮨 오피스에서 집행하는 복지 예산 지원을 받아 현재 2년짜리 장애인 사회 통합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사미스 소장은 "향후 목표는 커뮨 오피스가 지속해서 장애인 예산을 배정하게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장애인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민간단체의 노력

장애인 연금이나 기초생계급여와 같은 정부 차원의 장애인 생계 지원책이 없다 보니, 장애인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경제활동을 해야만 한다. 2009년에 제정된 장애인법 제7장에서는 장애인의 고용과 직업 훈련에 관한 규정이 담겨있다. 제34조와 35조에서는 각각 민간 영역과 공공기관의 장애인 고용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민간 영역은 1%, 공공기관은 2% 장애인 고용률을 달성해야 한다. 캄보디아 사회부 장애인복지과의 말리노 과장은 "아직 민간 영역은 통계를 내지 못했지만, 2016년 공공기관 장애인 고용률은 1.72%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UN에 따르면, 2009년 캄보디아 노동자의 72.3%가 농업·임업·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러한 경제적 상황에서 정부 고용대책만으로는 장애인 경제 활동을 충분히 뒷받침하기 어렵다. 그래서 현재 캄보디아에서 장애인 경제활동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바로 민간단체들이다.
 
'베테랑 인터네셔널 캄보디아(Veterans International Cambodia, 아래 VIC)는 캄보디아 내 장애인 대상 사업을 하는 주요 NGO이다. VIC는 총 세 개 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네 개 프로빈스('주' 단위와 유사하며, 캄보디아는 25개 프로빈스로 나뉘어 있다) 주민을 대상으로 사업을 진행한다. 전체 이용자는 약 1만 명가량이다.
 
VIC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직업훈련을 한다. 재봉이나 오토바이 수리, 미용 등을 교육한 후 훈련이 끝나면 일 할 때 필요한 도구를 지원한다. 또한, 한 지역 내 장애인 그룹(8~12명)에 500달러(한화 약 58만 원)를 지원한다. 사람들은 이 돈으로 닭이나 돼지 등 가축을 사서 기른다. VIC의 폴 활동가는 "장애인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활동을 24년째 해오고 있다. 이제 경험도 많이 쌓였고, 홍보도 잘 되어있다"고 자부심을 표했다.
 
그뿐만 아니라, VIC 직원들이 직접 지역 사회로 가서 인식 개선 교육을 하기도 한다. 한국과 달리 장애인 거주 시설이 없는 캄보디아에서는 거의 모든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인식개선 교육은 공동체 구성원들이 장애를 이해하고 '함께' 사는 것의 가치를 알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이는 장애인의 지역사회 안정적 정착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VIC는 이 밖에도 재활 병원을 운영하고, 보장구를 만들어 지원하기도 한다. VIC에는 휠체어와 의수, 의족 공장이 있다. VIC에서 근무하는 폴은 "보장구 지원을 원하는 장애인은 센터에 와서 진단을 받는다. 그 사람에게 맞는 보장구를 제작해 지원하고, 지역사회에서 보장구를 사용하는 점에 불편함은 없는지, VIC 스태프들이 한 달에 1~2회 가서 확인한다"고 전했다.

VIC에 있는 휠체어 공장. VIC는 여기서 휠체어를 만들어 장애인들에게 보급한다.

VIC에 있는 휠체어 공장. VIC는 여기서 휠체어를 만들어 장애인들에게 보급한다.

VIC는 2018년에 재활병원과 보장구 공장, 그리고 직업 훈련 교육 사업 운영을 정부에 이관할 예정이다. 운영 책임을 정부에 넘긴 이후에 VIC는 기술 자문 역할, 사업 내용과 대상 지역 확장 등을 담당하는 거다. 폴은 "이제 법도 만들어졌으니, 스태프들을 고용하고, 보장구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를 공수하는 역할은 국가가 해야 할 것이다. 우리(VIC)의 역할은 이전 경험을 바탕으로 제도를 견고히 하고, 앞으로 더 넓은 지역으로 확장될 수 있도록 추동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국가 차원의 제도가 만들어지는 지금, 토대부터 장애인 권리에 입각하여 쌓아가는 것이 핵심일 것이다. 민간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아래로부터의 제도'는 이제 서서히 정부의 공적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장애등급제, 장애인 거주 시설, 보수적인 활동보조 제도 등 한국을 비롯해 선제적으로 장애인 정책을 펼쳐왔던 국가들이 경험한 많은 시행착오를 캄보디아에선 반복하지 않을 기회가 남아있다. 캄보디아 장애인의 존엄한 삶과 이를 쟁취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많은 활동가에게 연대와 응원을 보낸다.

Source - bemin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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